카테고리 없음 / / 2001. 12. 07.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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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 인근 대운하의 물길 위에 수백여척의 함선이 열을 지어 나아가고 있었다. 등에 박힌 화살이 전해주는 묵지근한 통증이 자신의 부상이 결코 심상치 않음을 말해주었지만 고건무는 일단 아니타와 상권이 무사하다는 사실이 고맙기까지 하였다. 홍규에겐 제대로 전투조차 치러보지 못하고 휘하 함대를 소멸시켰다는 수치를 안고 사느니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전투에서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는 것이 훨씬 기꺼운 선택이었던 것이다. 현대의 9등위인 공무원제를 가져와서 10등위로 단순화하여 다듬은 관등제와 관등에 따른 관복 착용을 강제하는 관복 제정 및 율령 개정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이문진 등에게 맡겨 준비시킨 사안들이었다.

 

을지수 같이 고건무를 지근(至近)에서 오랫동안 모셔온 신료들은 고건무의 말에서 분노의 표정과는 다른 짙게 서린 안타까움과 초조함을 느낄 수 있었다. 괜히 동료병사들을 불안에 떨게 할 필요가 없었고 군기가 엄하기로 유명한 고구려 수군의 특성상 상관들이 듣기라도 하면 당장에 단단히 경을 칠 노릇이었다. 물론 방효태 그 자신도 이미 당나라의 지방 고위 수령직인 자사가 아닌 황룡단에서 정한 고구려 원정군의 대총관 중 한명으로 행동하고 또 말하고 있었다. 세상은 언제나 핵심과 주변부로 나누어지는 법이고 특히 권력은 그 본질적인 속성상 권력의 핵심부에서 멀어질수록 소외감과 박탈감이 더 커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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